우리 동네 보물찾기 「내 곁에 국가유산」

우리 동네 보물찾기 「내 곁에 국가유산」 12편. 부산광역시 동래구 1/2코스(`26. 4. 11.)

엉구야 2026. 4. 19. 21:26
부산지역의 역사적 정통성을 이어 온, 자부심을 간직한 동네가 바로 동래구라고 할 수 있다.
부산(부산포)이라는 지명이 언제 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으나, 일제시대(1936년) 이전에는 동래가 부산을 대표하는 오랜 중심지라고 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
그만큼 동래는 둘러 봐야 할 국가유산이 부산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하루에 다 즐기는 것은 어려워 2회에 걸쳐 즐겨보려한다.
가즈아~~~ 드디어 동래구다! 
 
  ※ 항상 그렇지만, 꼭 가봐야 할 우선순위의 국가적 유산은 
★을 표시한다. 그리고 왠만하면 한~두 줄로 짧게 요약하여,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국가유산 내용을 정리하려고 노력해 본다.

<즐기기 포인트 및 경로>

1. 동래향교(시 기념물)
명륜당(시 유형문화유산), 대성전(시 유형문화유산),

2. 동래읍성지(시 기념물)
내주축성비(시 기념물)

3. 복천박물관
☆ 청동칠두령(보물), ☆ 말머리모양 뿔잔(보물), ☆ 금동관(보물), ☆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보물)
↓ 
4. ☆ 복천 고분군(사적)

5. 충렬사(시 유형문화유산)

6. 구)동래역사

7. ☆ 동래패총(사적)

8. 이섭교비(시 기념물)


 

     시 기념물  < 동 래 향 교 >     

☞ 요약 : 조선시대 1392년(태조) 지방재정에 의해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린 후 1605년(선조) 재건 이후 여러 차례 옮겼다가, 1813년(순조) 현재 자리에 이르렀다. 공자 등 저명한 학자들의 가르침과 제사를 지내며 유생을 길러내는 등 지방 문화 향상 및 사회교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시 유형문화유산 < 대 성 전 >

☞ 요약 :  공자님과 중국의 유학자 7분 그리고 우리나라 유학자 18분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매년 봄,가을 석전대제(제사의식)를 봉행하는 건물이다.

 

 

시 유형문화유산 < 명 륜 당 >

☞ 요약 :  1815년(순조)에 건립하여 조선후기 향교의 건축적 특징(익공의 형태와 초각, 부재의 치목 등)을 잘 보여주고, 보존도 매우 양호하다.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집으로 가운대 대청을 두고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향교로서 보존이 잘 되고 있었다. 향후에 석전대제 할때 방문하여 구경해보고 싶다. 일반 가정의 조상 제사가 아닌, 공자님을 비롯한 유학자들의 제사는 어떻게 지내는지? 전통적인 절차와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동래향교 부산 동래구 동래로 103


 
 

 

 

 


     시 기념물  < 동 래 읍 성 >     

☞ 요약 :  고려말~조선초에 축성되어, 왜구 방어와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한 부산의 대표적인 성이다. 임진왜란때는 부산진성과 함께 왜군의 1차 목표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인 곳이다. 왜란 이후 재건을 하였지만, 일제시대에 평지 성벽 대부분은 철거되어 현재 북문과 동장대, 서장대 등이 일부만 복원되었다.

'서장대'의 당당한 모습. 이 곳에서 군사지휘나 훈련을 했을 것이다.

한눈에 동래역사를 알 수 있는 장소가 여기서 다 보인다. '북문', '복천박물관', '장영실 과학동산', '동래읍성역사관', '복천동 고분군'.

북문과 옹성. 전쟁시 가장 효율적인 방어를 위한 과학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임진왜란때 치열하게 전투한 비극적인 역사적 장소다. 많은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장면이 눈앞에 선하다.
인류는 전쟁과 함께 발전해왔다는 말이 있다. 그로인해 이런 역사적 유물과 기술의 발전을 볼 수 있다만,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소망해 본다. 비록 문명의 발전이 늦어지더라도 인간애가 넘치는, 평화로운 세상이기를...

 

 

시 기념물  < 내 주 축 성 비 >

☞ 요약 :  1731년(영조)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동래성을 대대적으로 복구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왜란 이후에 경상도권의 모든 물자, 인력을 동원하여 다시 동래읍성을 재건에 집중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곳 동래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증거이다. 동래(부산)는 조선의 인후(목구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잠시 '장영실 과학동산' 들러본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만 보던 기구들을 실제로 볼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단위로 이곳에 나들이 겸, 체험교육 차원에서 방문하면 좋은 곳이다. 나도 돗자리 깔고 쉬었다 가고싶으나, 일정상 PASS~~~


'동래읍성 역사관' 소규모 시설이고, 방문해서 간단히 동래읍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느끼기에 좋다. 해설하시는 분도 계시니 쉽고 재밌게 설명 듣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바란다.

동래읍성지 부산 동래구 명륜동 산 48-2


 
 

 

 


     복 천  박 물 관     

1981년에 개관한 이곳은 부산지역의 삼국시대 역사, 일본과의 교역 등 특히 가야사에 대한 많은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복천동 고분군과 연결되는 접근성이 매우 편리한 것이 특징이다. 동래에 오면 무조건 복천 박물관은 방문해야 한다.

국가 지정 보물이 5개나 있다고한다. 지금부터 하나씩 보물 찾기를 해본다.
1.청동칠두령, 2. 철제갑옷 일괄, 3. 말머리모양 뿔잔, 4. 금동관, 5. 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

제1전시실은 '고분과 문화' 주제 : 선사시대, 삼국시대, 부산의 고분문화, 영상자료가 전시
제2전시실은 '복천동고분군의 문화' 주제 : 복천동고분군 출토품에 대한 전시

아쉽지만... 보물인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은 소장고에 있어, 관람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모조품이라도 대신 보면서 가야시대 철기문화가 반영된 군사기술을 상상해본다.

 

 


★ 보물(복제품)  <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

 ☞ 요약 :  가야시대 만들어진 청동방울로 복천동 22호분에서 발굴되어, 고조선시대의 신앙과 제례가 당시까지 지속되었음이 증명 된다. 동아시아에서 유례를 찾아 볼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가야 청동 공예문화를 대표한다.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시대 토테미즘, 샤머니즘이 중요한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당시에 청동방울은 제사장에게 필수 도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역마다, 문화에 따라, 시간이 흐름에 의해 모양도 조금씩 달리했다. 저 방울을 들고 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백성들의 평화, 농작물의 풍년, 전쟁의 승리, 무병장수 등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겠지?

 

 


★ 보물(복제품)  < 금 동 관 >

 ☞ 요약 :  신라권역에서 출토된 금동관 중 매우 이례적인 형태로 당시 가야가 신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제작 된 것으로 보이며, 금속 공예술 및 정치 문화사 연구를 위한 좋은 자료이다.

 발굴 당시 복천 박물관 건립 전으로 진품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신라왕들의 금동관은 익히 많이 봤었다. 그런데 가야의 왕관도 비슷한 것으로 보아, 신라와 가야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것 같다.
중앙집권에 실패한 가야는 결국 신라에 합병되었지만, 가야만의 독특한 문화는 여전히 역사속에 살아 있다.

 

 


 보물(복제품)  < 말머리 모양 뿔잔 >

 ☞ 요약 :  삼국시대 제작된 말머리의 모양의 잔으로 간결한 특징적 표현과 거친 표면, 소박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비스듬한 형태라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닥에 다리를 붙여 놓았다. 신라 및 가야 토기 뿔잔 중에 걸작에 속한다. 

 현재는 복제품만 전시되어있고, 진품은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저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투박하고, 거부감이 살짝 있을 것인데, 당시에는 자연친화적인 주제에 실존하는 형상을 만들어 사용한 것은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말머리에 대한 형상은 당시 말은 국가적(군사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풍족한 말을 보유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하는 담긴 건 아닐까?

 


★ 보물(복제품)  < 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 >

 ☞ 요약 :  가야시대 도기로 원통형으로  손상되지 않고 출토된 희귀한 사례다. 조형성, 안정성, 세련된 문양표현 등 당시 도기 제작 기술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동아시아 고대사를 보면 비슷한 모양의 토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그만큼 활발한 교역으로 문화적 영향을 서로 끼친 것이다. 그러나 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은 가야만의 독특한 해학과 문양으로 보인다. 길쭉하게 뻗어 올린 모양과 각각의 구멍과 빗금 모양은 일률적이면서도 자유 분방함이 느껴진다.
가야의 설화에는 거북이가 많이 등장하고, 거북이는 가야의 상징이다. '구지가', 김해의 '구지봉' 등에서 알수 있듯이.

복천박물관 부산 동래구 복천로 63

복천박물관을 관람하고 아쉬운점을 적어본다.
첫번째. 현재 박물관은 복천동 고분군을 발굴하고 그 이후에 건립되어 어쩔수 없이 국가보물로 지정된 유물이 대부분 다른 박물관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관리 여건이 되면 진품이 부산시민 품으로 와야하고, 부산을 찾는 방문객에게 관람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 했으면 한다.
두번째. 복천동에서 출토된 소중한 5가지 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안내가 부족하다. 박물관 내서도 일반 소장물과 섞여 있어, 국보, 보물, 시 유형유산인지 구분하기가 불편했다. 명판에 표기와 함께 해설자료가 있으면 더 좋겠다.
 
시립박물관 규모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동래의 역사적 상징성이 매우 높고, 다른 박물관에 견주어 국가지정 유산 수량이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보물이 5개나 있어 자랑스러울 정도다. 조금더 개선하여, 명실상부한 동래구의 대표 국가유산 시설로 더 알려져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사적  < 복천동  고분군 >     

☞ 요약 :  복천동 일대 구릉 위에 가야시대 무덤들로 여러 차례 발굴하였으나, 대부분의 무덤은 아직도 땅 밑에 남아 있다. 덧널무덤, 돌방무덤, 널무덤 등 여러 양식이 발견되어 무덤양식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각 종 토기, 철제 갑옷, 장식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 되어 당시 시대상을 알수가 있다. 특히 단갑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갑옷, 괘갑은 완전한 상태로 출토되어 그 가치가 상당하다.

 부산에서 널리 알려진 고분군으로 삼국시대에 매우 중요한 장소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에 동래읍성이 있는 걸로 유추하면 조선시대까지도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대인 지금도 부산광역시에서 동래구라고 하면 학군과 역사적 전통으로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국시대~조선시대를 알고 싶으면 동래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푸른 하늘 아래 동래읍성 북문, 복천박물관이 훤히 보인다. 이 곳은 낮은 산?언덕? 아무튼 배산(동,서,북)으로 삼면을 감싸고 있는 아늑한 배산임수지형이다. 왜 사람들이 이런 장소에 모여 살고 싶어하는지 막상 와보니 그 분위기와 심리를 이해 할 수 있을 듯하다. 

고분군 가운데 있는 별도의 전시공간으로 향한다. 발굴 당시의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히 보존하여 공개하고 있는 곳이다.

다양하고 엄청난 수량의 부장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아직 발굴하지 않은 무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상상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다. 이 지역이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이 또한번 입증된다는 의미지 않을까?

헐~~~ 순장의 흔적이다. 북방민족역사, 영화, 교과서에서만 봤던 순장문화가 우리지역에도 있었다니...
현시대에서는 비이성적, 야만적 행동으로 볼수 있으나, 당시 청동기시대 이후, 정착.집단사회, 철저한 계급사회가 이뤄졌을때 최고 권력자는 신이자 한 집단의 생명줄로서 사망 이후에도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종들도 내세에 최고 권력자를 모시기 위해 순장을 하는 등, 당시로선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막상 순장한 장소를 직접 보게 되니 소름~~~

한적하고 여유로운 복천동 고분군을 구경하고 이제 도심속 안락교차로 부근에 있는 충렬사로 향한다. 

동래복천동고분군 부산 동래구 복천동 50


 
 

 


 


     시 유형문화유산  < 충 렬 사 >     

☞ 요약 :  임진왜란때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부산지방의 순국선열을 모신 곳이다. 전란 후 1605년(선조) 송공사(송상현공의 제사를 모신곳)가 시초이고 이후 1624년(인조) 충렬사로 바뀌고, 1652년(효종)때 송상현공의 충절과 학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서원(안락서원)의 기능도 갖추게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정기를 누르기 위해 방치 했었다가 1976년 대대적 정화공사 후 이전에 조사미비로 누락 된 많은 선열들을 추가로 계속 모셔서 현재 93분의 위패를 봉인하고 있다.

충열사 입구와 송상현공 명언비

'정화기념비'(충렬사 정화사업을 기념하고 호국정신 기린다는 내용)와 '의열각 4분의 위패'(송상현공과 정발 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과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두 의녀의 위패)

'충열사 본전'

본전에 모셔진 순국선열 89분의 위패

근교 주민들이 산책 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이 잘 조성되었다. 그리고 충렬사 길을 통해 군관청(시 유형문화유산)을 둘러 보려 했으나 당분간 입산통제였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도전해 본다.

'임진동래 24공신 공적비' 당시 순절한 동래지방 출신의 24별전 공신의 공적비

'의중지' 작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 충렬사를 둘러보고 잠시 쉬어 갈수 있다.

충렬사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 345

다음으로 구.동래역사로 걸어가는 중 이색적인 길이 있어 한컷 찍어 본다. 소소한 테마로 도심을 꾸미는 것도 방문자로서 눈길을 잡게 한다. 아이디어 좋아요~~~ 
 
 

 


 


    국가등록문화유산  < 구) 동 래 역 사 >     

옛날 영화에서나 볼법한 건축양식의 구)동래역사다. 타임머신을 타고 1934년으로 온 것 같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는 일제시대 수탈과 침략의 목적으로 시작되어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동래역은 동해남부선으로 부산진에서 해운대를 거쳐 울산까지 노선이나 동래 경유를 희망하는 지역민들이 6년간 유치활동으로 노선을 변경해 탄생한 역사이다.
일제의 억압 상황에서도 철도 노선을 변경하게끔 할 정도로 동래지역민의 힘과 위상을 알 수 있다.
관광사진 촬영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있다. 사진 많이 찍어야겠다.

어릴적 만화 '은하철도999'가 생각나게 하는 기차. 요즘 신식 기차도 멋지지만, 개인적 감성으로는 저 당시 레트로한 기차가 더 맘에 든다.

역 앞에 원조 레트로 감성을 풍기는 '역전 영진 슈퍼'가 동래역사의 변화를 지켜보며, 당당히 사거리 중심에 서있다.

역사 내부로 들어가면 과거 건축 구조를 잘 보존하고, 전시 시설에 걸맞게 깔끔하고, 정갈하게 개보수 되어 있다.
규모에 비해 볼거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979년생인 내가 자주 이용했던 기차역은 부산역(초량동)이고 그때도 현대식 기차역이라, 오늘 본 동래역사의 모습은 사실 처음이고, 낯설다. 왜냐하면 어릴적 내가 살던 동네가 남부산인 영도라 북부산인 동래까지 올 일이 없기에 당연히 역사를 볼 일도 없었다.

옛날 물건들을 보니 처음 보는 것도 있고, 익숙한 물건들도 있었다. 역시 나는(X세대) 신.구의 문물을 접한 과도기 세대 인것같다.

부산 구 동래역사 부산 동래구 낙민동 112-3


 

 


 


     ★ 사적  < 동 래 패 총 >     

3~4세기 초기 철기시대 조개무지로 골각기, 동물뼈, 쇠도구, 독무덤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 되었고(석기는 거의 출토 되지 않음) 철을 달구었던 야철노지도 확인 되었다. 유물의 양이 많고 질도 우수하여, 당시 동래지역의 강력한 정치집단과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도시 정화 및 발굴 이후 부지만 남아있다. 

솔직히 좀 실망했다. 영도 동삼동패총 전시관 방문 경험이 있는 나의 눈이 높아진건지, 동래패총은 그냥 허허벌판이고 아무것도 없는게 영~~~ 쫌.... 국가 사적에 걸맞는 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역적으로 동래라는 브랜드, 근처 구.동래역사 등 인프라를 활용하여 방문객이 와서 뭐라도 하나 건져가는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소중한 국가유산인데...

휑~~~

동래패총 부산 동래구 온천천로319번길 60

다음은 오늘 1코스 마지막 목적지인 이섭교비를 향해 걸어간다. 오랜만에 이 곳을 방문해서 그런지 카페도 많이 생겼고, 정비사업도 잘되어 있어 인근 주민들이 산책하기에 쾌적한 장소로 개선되었다. 날씨도 좋고 가는 길도 좋아 발걸음이 가볍다.
 
 

 

 

 


     시 기념물  < 이 섭 교 비 >     

지금은 없어졌으나, 1694년(숙종) 온천천을 건너기 위해 놓여졌던 아치형의 이섭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부산지방의 기념비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속하며, 개축에 관한 기록이 있어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여기는 눈여겨 찾지 않으면 쉽게 갈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국보, 보물, 사적 만큼의 중요도가 낮아도 이정표라도 하나 있으면 근방 시민들이 오며 가며 비석의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널리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섭교도 언젠가 복원이 되었으면 한다.

이섭교 부산 동래구 낙민동

오늘 즐기기를 하면서 동래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동래는 명실상부한 부산의 역사와 전통의 중심지'다. 또한 국가유산이 풍부한 지역으로 그 가치와 중요성이 부산에서 가장 높은 편이며, 현재 보존과 관리가 전반적으로 잘되어 있으나 일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 조금 더 개선하면 향후 많은 방문객들이 와도 전혀 손색없는 부산의 위상을 충분히 상승시킬 여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동래구다.
 
오늘은 절반만 즐겼고, 다음에 나머지 동래구 국가유산을 즐겨보려한다. 기대된다. 동래구는 인정한다!

 


 

<부산광역시 동래구1편 요약>
  - 국가유산 종류 : ★ ★ ★ ★ ★
  - 보존 관리 상태 : ★ ★  ★  ★ ☆
  - 방문 편리성 : ★ ★ ★ ★ ☆ (도보 4시간 소요)
  - 방문자 스탬프 : 2개
  - 총평 : ★ ★ ★ ★ ★